지난 10일이죠. 현지시각으로는 9일이고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총 4개의 오스카상을 받았습니다. 봉준호는 한국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을 안겨준 최초의 감독이 되었고 이제는 '살아있는 전설', '리빙 레전드'로 등극해버렸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한국인으로 정말 자랑스럽고 눈물 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네요.

많은 전문가와 일반 사람들이 <기생충>이 아카데미 국제영화상과 각본상 등은 예상하였으나 작품상은 보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 91회의 아카데미 역사에서 비 영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이력은 없었기 때문이죠. 또한,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1955년 <마티>이후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역사에 남을 사건, 봉준호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압도적인 영화의 완성도는 말할 필요도 없고, 날카로운 풍자와 자본주의 사회 속 계급 간의 갈등을 다룬 주제가 지금의 시대정신과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진 것도 크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 전찬일 선생님의 말씀을 빌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더욱이 지난 3년간 아카데미는 ‘아메리칸 퍼스트’라는 편협한 이데올로기보다는 ‘반-트럼프적 다양성 가치’를 표방한 영화들을 최종 승자로 비상시키는 파격을 연출한 바 있다. 그로써 기회 있을 때마다 필자가 역설해온 영화의 ‘공론장(Public Sphere)적’ 역할을 증거했다. 2019년의 <그린북>과, 2017년의 <문라이트>는 인종 차별을 극복하려는 흑인들의 흑인들에 의한 흑인들을 위한 영화들이었고, 2018년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멕시코 과달라하라 출신의 명장 기예르모 델 토로가 빚어낸,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어드벤처‧공포‧로맨스‧멜로‧스릴러 등 복합 장르영화였다."

영화의 '공론장적' 역할, 즉 영화는 작품이 가진 주제나 문제의식을 세상에 화두로 던져 모두가 그에 관해 이야기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은 8,469명의 아카데미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아카데미의 세계적인 권위와 오스카 상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아카데미 작품상은 영화의 '공론장적' 역할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되는 것이죠. 상 그 자체가 어떤 메시지(정치적일 수도 있는)를 주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트럼프의 미국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어떤 모습인가요. 트럼프는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공화당의 표어를 필두로 인종 차별과 성 소수자와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며 자국민 우선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죠. 아카데미는 그런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려왔습니다. 

따라서 <스포트라이트>로 언론의 정치적 올바름과 저널리즘, <문라이트>와 <그린북>으로 인종차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사회적 소수자와 장애인 차별을 이야기해온 아카데미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갈등을 다룬 <기생충>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는지도 모릅니다.

글이 두서없이 길었는데 결론을 요약해 보자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추구라는 메시지 전달을 위한 도구로서 아카데미 위원회의 선택을 받았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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